별 거 아니지만 여자로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꽤 많이 있다. 반대로 남자로 살아보지 않았기에 늘 당해왔던 부당함의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했을 것들도 있다.

여성복엔 주머니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

중/고등학교에서 입고 다니는 교복 치마에는 주머니가 있지만 그 외에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치마들은 교복과는 구조부터 많이 다르고 주머니가 아예 없다. 주머니는 있을 땐 별 거 아니지만 없어지는 순간부터 외출 자체가 달라지는 도구다. 현대인은 지갑, 핸드폰, 기타 EDC라 불리는 소지품이 있기 마련인데 이걸 주머니에 넣을 수 없으면 손에 들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어야 한다. 심지어 핸드폰, 지갑처럼 자주 꺼내야 하는 물건은 백팩에 넣으면 꺼내기가 굉장히 불편해서 보통은 옆으로 매고 다니는 가방을 선호하게 된다. 이게 바로 여성들이 핸드백을 매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많은 남자들을 보면 가방을 매기 귀찮다고 주머니에만 물건을 넣고 다니는데 일주일만 주머니를 쓰지 않아보면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 될 것이다.

청바지 등을 입으면 주머니가 있기는 한데 오늘에서야 깨달은 게 있다. 남성복은 주머니에 핸드폰이 충분히 들어가지만 여성복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면 튀어나오고 반도 채 넣지 못해서 허리를 숙이면 빠져나와버린다. 교통카드나 넣는 구멍일 뿐이다.

남성이 돈을 안 내도 되는 것에 돈을 내게 되는 것

목욕탕에 가면 여성은 수건을 2개 지급받아 그것만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퍼져서 익숙하다. 이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서로 충격이었을 것이다. “왜 수건을 맘대로 못 쓰지?”, “수건을 맘대로 쓸 수 있어?” 하고 말이다.

수건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여성에게는 제한되어 있다. 헤어 드라이어도 동전을 넣고 제한 된 시간동안 쓸 수 있다. 목욕탕이 아니어도 치마를 입었을 때 필요한 담요를 빌려야 하는 상황도 있고 남성이라면 없어도 별 문제가 안 되는 휴지, 물휴지, 손수건을 항상 챙기지 않으면 여성에겐 문제가 꽤 커지는 경우도 있다. 남성도 이런 걸 챙겨 두면 편하긴 하지만 별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챙기지 않는 것이다. 이건 남자, 여자의 삶 모두를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밖에서 밤을 지내는 것

작업을 하거나 놀다가 집 밖에서 밤을 지내게 되는 건 꽤 흔한 일이지만 이것에 대한 난이도가 성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남성의 경우 씻지 못해서 좀 꾸질꾸질해 지는 정도가 끝이지만 1~2일 정도야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반면 여성은 안전하지 못 한 곳에서 잠을 자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고 그 외에도 신체적인 문제로 인해 씻어주지 않으면 병이 생길 수도 있다. 머리를 못 감아서 더러운 것과는 레벨이 다르다.

그 외에 트랜스젠더는 또 다른데 패싱을 위해서 남들은 안 해도 되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집이 꼭 필요하다.
옷은 여성복인데 화장은 점점 풀리고 그 상태로는 길 한복판에서 옷이 벗겨진 것과 같다. 날마다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에 대해서도 케어를 해 줘야 하는데 패싱이 안 되니 화장실에서 어떻게든 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집에 가야 한다. 아마 밖에서 밤을 지내기에 제일 어려운 삶이 아닐까 싶다.

브라자 XX

착용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게 얼마나 욕이 나오는 물건인지 모른다. 갑갑하고 답답하고 덥고 땀 차고 와이어가 찌르는 날엔 모든 걸 죽여버리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상쾌한 기분이 “브라자를 푸는 순간”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렇게 불편한 브라자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인 경우엔 온갖 욕을 먹게 되고 패싱을 위해 착용하는 사람들은 패싱이 안 된다.


인간은 불행하게도 한가지 성별을 가진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고 서로의 삶을 알 방법이 거의 없다. 여자로 살아가는데 불편한 게 꽤 많은데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이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모를 수밖에 없는 건데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난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둘 다 살아봤기 때문에 안다. 둘 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행동들이다.

Aferojn mi ne sciis kiam mi ne estis virino (eo)
내가 여자가 아니었을 땐 몰랐던 것들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