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와 음식점은 모두 가게이면서 서비스업이다. 손님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주인이 있다면 장사가 안 되는 게 당연한 곳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둘은 굉장히 다른데 간단히 말하자면 음식점들은 불쾌하다.

가게이면서 서비스업인 것들을 대충 나열해 보면 옷가게, 음식점, 미용실, 술집 등이 있다. 서점 같은 곳은 내가 돈을 낼 때 이외에는 직원을 만날 일이 딱히 없으니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는 손님들에게 친절하다 못해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을 표하기도 하는데 유독 음식점들만 내 기분을 확 나쁘게 만드는 곳이 많았다. 재밌는 건 조금이나마 고급스러운 음식점, 혹은 체인점을 가면 그런 일이 마법같이 사라졌다. 서점처럼 딱 주문만 받고 서빙만 하기 때문일까?

나는 트랜스젠더이고 아직 겉모습에 티가 많이 나기 때문에 옷가게나 화장품 가게 같은 곳을 가는 게 심적으로 힘들다. 어떤 말을 들을 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친구랑 같이 가고 나는 목소리를 아예 내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가게 직원들은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준다. 내가 트랜스젠더인 걸 아예 눈치도 못 챈 것처럼 대해줘서 나 혼자만 바보같이 걱정했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다. 분명히 신체적으로 티가 날텐데도 “언니는 키가 커서 이런 거 다 잘 어울리네~” 같이 기분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 말로 대해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상대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마음을 열게 만드는지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다.

반면 음식점은 심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갔다가 엄청난 일을 당한다. 화장품 가게, 옷가게와 다르게 음식점은 모두가 공평하게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곳이다. 배가 고픈 것엔 성별, 종교, 인종 나이 모든 것을 가리지 않지만 가게 직원(주로 40~50대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밥 먹는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만 골라 한다. 여자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자기에게 더 이득인데도 여자가 뭘 그렇게 많이 먹느냐며 구박을 하고 심지어는 같은 돈을 내는데 밥을 적게 주기도 하고(내 친구는 이거에 화나서 밥 한 공기 더 시켜 먹었다) 가만히 있던 나에게는 “아이고 여자인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하며 친한 척을 한다. 참고로 “여자인 줄 알았어”는 누구에게 말하든 손해인 문장이다. 남자에게 말하면 기분 나쁘고 여자에게 말하면 큰 사고다. 난 저 말을 아줌마가 직원인 거의 모든 음식점에서 들어가며 밥을 꾸역꾸역 먹었고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저번엔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가 저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어디 가서 그따위로 지껄이지 마세요”라고 정색하고 화를 냈지만 “난 아무 잘못이 없는데 니가 화를 내니 난감하다”라는 표정을 짓고는 가버렸고 차라리 다음부터는 저런 말을 들으면 수저통을 엎어버리고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안 가서 냉면집에서 “여잔 줄 알았는데 남자네?” “그런데 냉면도 먹고 만두도 먹고 그렇게나 많이 먹어?” 콤보를 당했고 나는 곧바로 제발 그딴식으로 지껄이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수저통에서 젓가락도 한웅큼 집어서 뒤로 던져버렸다. 배는 고파서 냉면은 다 먹었지만 화가 안 풀려서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고 수저통에 남은 젓가락을 집어서 계산대까지 헨젤과 그레텔이 빵을 떨어뜨리듯이 쭉 길을 만들고 나왔다.

돈만 제대로 내면 밥을 먹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데 아줌마들은 왜 그렇게 먹는 사람의 기분을 건드리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갔다. 이게 아줌마들만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옷가게 주인들도 비슷한 나잇대의 아줌마들이 많았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게 업종 간의 무슨 환경적 차이가 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니가 아무리 화가 나도 옷가게는 안 가면 땡이지만 배가 고프면 음식점은 다시 와야 할 걸?” 하는 그런 생각일까? 음식점은 세상에 아주 많이 있고 저런 말을 하는 음식점들은 앞으로도 찬물을 끼얹고 다시는 안 갈 예정이다.


딱 한 군데 예외인 곳은 있었다. 나를 친하게 부르고 싶은지 “예쁘게 생긴 남자라 기억하지”라는 말을 했는데 내 표정이 썩어버리는 걸 바로 발견하고는 “아, 혹시 기분 나빴니?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라고 물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냥 성별이나 그런 얘기는 아예 안 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을 해 줬다. 아마 내가 며칠 전에 냉면 먹다가 수저통 엎어버린 걸 봐서 그렇겠지.

언제까지고 기분나쁨을 숨기고 그냥 “네.. 아하하.” 하고 웃어 넘기면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 한 줄도 모르고 계속 같은 잘못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같이 있는 친구들에게까지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게 미안해서 문제일 뿐.

Ili estas malsamaj. (eo)
They are different. (en)
그들은 다 똑같지 않다.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