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내가 시스젠더로 태어났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굉장히 궁금할 때가 자주 있다. 내가 원하는 성별은 사회적으로 약자이긴 하고 물론 지금 상태로는 시스젠더인 척 하면서 특권을 누리고 살 수도 있다. 가끔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애초에 트랜스젠더란 몸과 마음의 성별이 맞지 않아 생기는 불편함 때문에 굳이 용어까지 생긴 거다. 삶에 아무런 영향도 안 끼치는 거였으면 애초에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로 살면서 누리지 못하는 당연한 것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성별의 시스젠더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누구는 당연하게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 목욕탕, 탈의실을 못 들어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요즘은 카메라 같은 문제 때문에 시스젠더도 마음을 놓고 들어 갈 수만은 없겠지만 그게 왜 공포인가 생각해 보면 트랜스젠더에겐 같거나 그 이상의 공포가 된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만 씻고 나와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얼굴을 숨기고 손을 씻게 되고 목욕탕은 그냥 이 세상에 없는 존재로 보는 게 편하다. 나도 타지에서 찜질방 같은 걸로 숙박을 해결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냥 일찍 집에 오거나 혼자서 2인치의 요금을 내고 모텔에 가거나 해야 한다.

밖에 나갈 때 옷을 대충 입을 수도 없다. 시스젠더들은 털털하게 입어도 “왜 그렇게 안 꾸미고 다니냐”라는 말을 끊임 없이 듣는 정도지만 트랜스젠더들은 대충 입어서 신체의 성별을 감추지 못하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한다. 같은 이유로 밖에서는 말을 잘 할 수가 없다. 선택적 함구증 장애를 간접적이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내가 사는 이 국가에서만 생기는 특별한 문제도 있다. 신체적으로 남성이기만 하면 국방의 의무가 생기는데 현재의 징병제 시스템 자체의 문제도 크지만 신체적으로 남성인 사람에게만 이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에게 생기는 큰 문제들이 있다. 내가 신체적 성별이 다르게 태어났으면 아예 관심을 꺼도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었을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 큰 문제들이 있으니 이 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화장실, 욕실, 숙소,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 등이 문제인데 이것들만 해결 돼도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나라에 트랜스젠더가 나 혼자인 것도 아니고 트랜스젠더 모아다가 따로 숙소 배정하고 화장실을 두는 게 그렇게 어렵나?

법적으로는 트랜스젠더인 걸 증명하면 면제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굉장히 비인간적인데 반드시 생식기 수술을 하고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이 세상엔 수술을 하지 않고 살아가며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할 줄 아는 파트너를 만나 여건이 되면 아이를 갖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건 아예 포기해야 한다. 성별 정정도 이와 비슷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냥 이 나라를 떠나는 게 더 빠르다는 말도 있다.

연애도 어렵다. 아무리 남의 성 정체성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본능적인 끌림은 이성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신체적 특성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 해도 신체적 성별 자체가 자신의 지향성과 맞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끌리지 않는다. 첫 문단에서 말한 대로 그냥 이 신체적 성별대로 살아가면 연애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을 때 파트너가 내뱉는 온갖 발언들을 참을 수가 있을까? 결국 이쪽으로 가면 “너는 남자가 아니잖아”, 저쪽으로 가면 “너는 여자가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는 신세가 된다.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로 태어나도 힘든 세상이긴 하지만 적어도 당연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는 이 신세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그랬다.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들은 자기들이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인 줄도 모르고 살아 간다고. 내가 시스젠더로 태어났다면 지금 겪는 인간관계의 문제나 우울증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자로 태어나서 온갖 특권을 특권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이렇게 우울하게 살아가는 걸 생각하면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차라리 그렇게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렇게 살기는 싫다. 내가 왜 트랜스젠더인데.

Se mi naskiĝis virino. (eo)
If I was born a woman.